세종대왕을 읽고
세종대왕은 1397년에 태어났습니다. 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써 학식이 뛰어나고 책읽기를 좋아했습니다. 세종의 어릴 때 이름은‘도’로 16세가 되던 해인 1412년 양주 심 온의 딸과 결혼을 하면서 충녕대군으로 불리었습니다. 충녕 대군은 어려서부터 활솜씨가 뛰어났는데 화살에 화살촉을 달지않아서 무의미한 살생을 피하고싶다는 생각을 가질 정도의 어진 마음과 성품을 지닌 사람이였습니다.
반면에 세종의 첫째 형인 양녕은 충녕과 양녕은 같은 피를 나눈 형제였지만, 성격이나 행동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그의 성격은 살생을 즐기지는 않지만 신하들 사이에 과격하고 제멋대로라는 소문이 나돌정도였습니다. 충녕은 한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인격 수양에 매진하는 반면에 세자는 음주 가무에 빠져 세자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양녕은 세종이 자신보다 어질다는 것을 알고 세자의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책읽기를 게을리 하고 사냥을 다니며 아버지인 태종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고, 둘째 효령 또한 이러한 형의 뜻에 따라 원각사로 들어가 원각사의 주지가 됩니다. 신료들은 세자의 행동을 바로잡기위해서 여러 번의 충언을 하였으나, 세자는 왕위계승에 관심이 없다며 그것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많은 신료들은 세자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그중에는 충녕이 양녕을 밀어 내고 왕위를 잇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충녕과 양녕의 우애는 돈독하여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세자가 태종을 찾아가 말하기를, "자신이 세자 직위를 내놓을테니 셋째(충녕)에게 물려주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태종의 셋째 아들인 충녕 대군이 세자에 책봉 되었고, 이때 세종의 나이 22살로 조선의 4대 왕이 되었습니다. 태종은 세종이 세자에 책봉 된지 3달 만인 1418년 8월 10일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됩니다. 세종이 왕이 되었을 당시 세종의 주변에 유능한 신료들이 없었기 때문에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그렇게 유능하고 똑똑한 신료들을 많이 뽑고 유능한 학자들을 양성할 수 있는 학문 연구 기관인 집현전이 설립됩니다.
집현전은 고려때 처음 설립되었고 태조가 새롭게 단장하였지만 그 후 제대로 된 업적을 남기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가, 세종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고, 훗날 이들은 세종을 도와 한글 창제라는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집현전에서 발행된 역사적 가치가 높은 책중 하나인 농사직설도 이 집현전에서 발행된 것 입니다.
세종 대왕이 한글을 만들어 펴낸 때는 1445년입니다. 물론 그때는 한글이라는 이름을 쓰지 는 않고 훈민정음 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라는 뜻을 지닌 말입니다. 세종 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어 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당시 쓰고 있던 중국의 한자는 백성들이 배우고 익히기에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종 대왕은 백성들도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글자인 한글을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오늘 우리가 쓰고 있는 자랑스런 한글이 된 것입니다. 우리 한글은 만들어진 지 수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자랑스럽게 쓰기 시작한 때는 백년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 동안 우리 조상들이 잘못 샐각하여 한자만 고집하며 써 왔기 때문입니다. 한글은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글자 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글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민족의 혼을 담은 그릇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글은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자랑 스러울 정도로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글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이 우리 한글을 지키며 연구하여 발전시킨 세종대왕을 본받아 우리도 한글을 더 갈고 닦는 일에 힘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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